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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망한 소개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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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5

사랑하기엔 너~무 눈치없는 당신

썸녀는 고양이처럼

이번에는 정말 잘 해보고 싶었거든요. 소개팅녀가 한 눈에 보기에도 꽤 인기가 좋을 것 같은 스타일이었기 때문만이…… 맞아요. 그래요, 예뻤어요, 많이. 하지만 이 여자, 어떻게 비위를 맞춰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자 마음 갈대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갈대밭이 만개해도 되는 건지. 될 놈은 뭘 해도 되고, 안 될 놈은 뭘 해도 안 된다더니……. 나는 안 될 놈인가? 자책도 많이 했어요. 처음엔 썸녀도 제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거든요. 그러니까 애프터도 승낙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 하루하루 지날수록 느낌이 쎄~ 했어요. 알잖아요, 쎄~ 한 거.

그녀가 광화문을 좋아한다고 해서 애프터 장소는 광화문으로 배려했죠. 저는 탯줄 떨어지고 한번도 밟아본 적 없는 낯선 동네거든요. 그녀가 잘 아는 파스타 집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어요. 여기까진 특별히 제가 실수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필이면 그날 이후 제가 많이 아팠어요.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매일 콧물 샤워를 했죠. 요즘 애들은 키도 크고 체격도 남다르던데 요즘 감기, 얘네들도 남다르더라고요. 더럽게 질겨, 도대체가 떨어지질 않아. 만날 수가 없으니 한 2주간 연락만 주고 받았어요. 그래도 제 카톡에 바로 바로 대답해주더라고요. 하루 종일 모니터 마주하고 있었더니 눈이 아프다면서도 답장은 꼬박꼬박 해줬던 걸 보면, 분명 제게 호감이 있는 거였어요.

더 이상 미루면 안될 것 같아 독감 낫기도 전에 약속을 잡았어요. 이번엔 제가 맛집도 알아보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생각해 뒀죠. 유명한 맛집이라 사람이 많을 것 같아서 일부러 느즈막한 시간을 골라 약속 시간을 정하기도 했어요. 뭐 맛집은 끼니 때 장사가 아닌지라 결과적으로 북적거린 건 마찬가지였지만. 이런 건 자연재해 같은 거잖아요. 내가 독감에 걸리고 맛집에 사람 많았던 것까지 내 실수라고 한다면…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눈이 두 개라서 죄송합니다, 두상이 동그래서 죄송합니다, 다 사과하란 소리지 뭐.

그날 이후부터 썸녀의 태도가 돌변한 거예요. 재깍재깍 오던 카톡도 답장 속도도 느슨해진 거죠. 아마도 그녀,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사람에게 짜게 식고, 한 발짝 물러서는 사람에게 바짝 타오르는, 고양이 같은 타입 아닐까요? 제가 두세 번 애프터를 신청하고 호감 있는 표시를 하니까 이제 시큰둥해지는 거 같은데……. 이런 그녀를 다시 처음으로 되돌려놓으려면 당기는 건 한 박자 쉬고, 밀어야 되는 타이밍인 거죠? 밀고 당기기에는 좀처럼 자신이 없네요.

소개팅 애프터 받아줬다고 그녀가 반한 걸까?

단도직입적으로 말이에요. 소개팅 애프터는 한번 더 보자는 의미일 뿐이에요.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가슴이 왈랑왈랑 거리는 뽀얀 마음 솔로에게, 이 풍진 세상은 야속하고 모질기만 하잖아요. 쉽게 심장 문 열고 방 한 칸 척척 내어줬다가는 그 뽀얀 마음, 쉽게 너덜너덜해진단 말이에요. 그러니 소개팅 애프터가, 당신 나랑 결혼할래? 라던가 우리 당장 사귑시다, 뭐 그런 뜻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소개팅 애프터를 받아준다는 것도 마찬가지. 나 당신과 연애 농사 짓다가 자식 농사까지 한번 꿈꿔보고 싶어요, 뭐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예요.

한번 더 보자는 말에 한번 더 봐도 좋다는 뜻일 뿐. 그러니 애프터를 던진 자, 수락한 자 모두, 51%의 성공 가능성과 49%의 실패 가능성을 가졌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사연남 오빠. 썸녀의 마음이 불 만난 마른 장작처럼 훌훌 타오르다가, 오빠의 적극적인 대시에 요런 쉬운 남자 재미없어, 하고 짜게 식은 게 아니란 소리. 한번쯤 더 만나 볼 수 있을 거 같아서 만나보니 더 이상의 감흥이 오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면 편할 거예요. 붙었던 불이 꺼진 것이 아니라, 원래 없던 불씨가 끝까지 생기지 않았을 뿐.

이미 슬픈 사람

물론 사연남이 아팠던 거, 맛집에 사람이 뻑적지근했던 거, 그런 건 실수라고 할 수 없죠. 하지만 (사연남의 표현대로) 자연재해는 사연남 이 오빠의 모태솔로급 눈치라는 거. 광화문이 그녀의 잇플레이스라고 해서 "광화문 좋아하시면 거기서 만나요. 저는 한 번도 안 가봤어요."라고 말했을 거라는 건 안봐도 비디오. 광화문이 썸녀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고 해도, 그저 이끄는 대로 오라면 오라는 대로 가라면 가라는 대로, 쫄래쫄래 썸녀를 따라다니며 첫 번째 공식 데이트를 마쳤다는 점. 안구에 습진이 올 만큼 슬픈 풍경이에요. 물론 모든 데이트를 무조건 남자가 리드해야 한다는 건 아니죠. 그러나 첫 데이트부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건, 나랑 연애해도 별 건 없을 거예요, 라고 말해주는 꼴. 이 장소는 잘 모르지만 당신을 위해 나도 조금은 준비했어요, 정도는 센스인 것을.

하나 더. 하루 종일 모니터를 노려보며 업무에 시달린 사연녀가 눈이 피로하다 적었다면? 그건 눈이 피로해도 당신의 카톡에는 바로바로 답장하니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는 뜻이 아니란 말이에요. 삐콤씨를 사다 바치라는 뜻도 아니란 말이에요. 이제 까똑까똑은 그만하고 싶으니 할말 있으면 전화를 걸어달라, 혹은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는 뜻이란 말이에요. 정말 모르겠냔 말이에요. 눈물 난단 말이에요.

모태솔로급 눈치를 시전하옵시고, 밀당의 타이밍을 알고 싶다 하옵시며, 썸녀 이 고양이 같은 앙큼녀! 울부짖는 사연남 오빠의 이토록 아름다운 헛다리를 썸녀가 모를 리 없잖아요. 거기에 사연남이 준비한 데이트 코스마저 사람이 북적거렸다니, 자연재해가 끼얹어진 거 맞습니다. 맞고 말고. 그러나 당신은 밀고 당기기의 타이밍을 연구할 때가 아니라,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 말의 의도를 한번쯤 생각해보는 습관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이미 슬픈 사람이 된 것 같지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