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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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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05

업무 차 북유럽 쪽으로의 해외출장이 잦다. 얼마 전에도 출장을 갔었다. 현지 스탭들과 회의를 마치고 건물을 나서려다 그만 외벽에 기대서고 말았다. 저 거리로 한 발자국도 옮겨 놓을 수 없었다. 밖으로 나돌기 보다는 가족이나 연인이 있는 집으로 종종 걸음 치는 그곳 사람들로 한산해진 거리. 외로움이 밀려와 꼼짝할 수 없었다. 그간 켜켜이 쌓였던 외로움이 외지에서 극에 달한 나머지 몸이 돌로 굳어지는 듯했다.

"그런 나를 남들은 부러워하지. 정년 걱정도 없이 괜찮은 연봉을 받는 외국기관에서 쉰이 넘은 지금까지 30여 년이나 일한다면서..." 몇 년 만에 나를 불러낸 친구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자식이 있어도, 남편이 있어도 외로운 건 매 한가지라고들 하는 말, 많이 들어 봤어. 하지만 남과 비교선상에서 갖다 붙이는 위안은 이제 하나도 와 닿지 않아. 다 자기 나름으로 느끼고 사는 거니까. 이젠 외로움보다 더한 두려움이 있어. 나 죽은 다음에 한 달도 더 지나 발견되면 어떡하니?"

내 입도 돌처럼 굳어지는 듯했다. 친구의 촉촉한 눈과 떨리는 목소리 앞에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국에서 사는 가족들과 떨어져 홀로 지내 온 국립대 명예교수가 숨진 지 한 달 만에 발견됐다는 최근 일이 떠올랐다. 일본에서의 얘기인 줄로만 알았던 '고독사'가 어느새 우리나라에, 내 주변에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졌다. 하기야 우리나라 전체 2천만 가구 수 가운데 4분의 1 정도가 현재 나 홀로 가구이고, 머잖아 3분의 1이 넘게 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으니 남의 얘기가 아니다.

외로움도 마케팅
결혼비율이 뚝 떨어진다는 30대 후반 여성들은 8명 중 한 명꼴인 25만4천 명이 2010년 현재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중 절반에 못 미치는 수가 40대와 50대 초반에 결혼하지만 18만5천 명 정도는 계속 싱글로 남는다는 예측이다. 어울리는 상대를 찾기 어려운 고학력 고소득이어서, 또는 보다 어린 여성을 선호하는데 밀려서인 경우도 적지 않으리라. 그렇게 싱글인 친구들이 주위에도 여럿이다. 더러는 홀로된 어머니와 둘이 살기도 하고, 신앙과 일, 공부에 파묻혀 지낸다. 짐짓 외로울 겨를이 없어 보이는 그들이다.

그런데 가장 멋있게 사는 듯한 친구가 고독사까지 걱정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지극히 개인적인 분위기의 직장에 오직 급여 때문에, 그리고 이 일 아니면 할 일이 없어서 매여 있다는 게 친구의 솔직한 얘기이고 보면 마음을 쏟을 그 무엇이 없어 외로움에 사무치는 지도 모른다. 하지만 홀로 태어나 홀로 가는 이 세상에 다소간 차이는 있을지언정 외롭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이야기가 통하고, 고민을 털어 놓고, 때로는 기댈 수 있는 그 누구를 아쉬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언젠가 AFN Korea 방송의 캐치프레이즈가 인상적이었다. 'Get Involved'! 외로움을 물리치려면 참여하라, 관여하란 것이었다. 그러나 자칫 휘말리는 불상사가 생길까, 행여 이용당하지나 않을까, 상처 받지나 않을까 경계의 선을 넘지 못하면서 외로움은 깊어지게 된다. 대신 그사이로 온갖 상품들과 서비스가 비집고 들어온다. 심리 상담을 해주는 카페가 등장하는가 하면, 여행상품에도 가이드 대신 심리치료사나 전문의가 동행한다. 마치 가족처럼 나의 취향과 성향을 알아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상품들을 골라 보내주는 전문업체도 있다.

사람 크기의 인형이라든가, 사람이 누워있는 모습이 그려진 이부자리가 등장한지는 이미 오래다. 대화를 나눠주는 곳도 생겼다. 일본에서는 고민 들어주기 서비스가 유행한데 이어 대리주부 서비스도 등장했다. 외식에 질리거나 장보러 갈 여력이 없어서 집에서 먹는 밥과 대화상대가 그리운 이들을 위한 것이다. 어머니가 해주던 생일상을 고스란히 주문할 수도 있다고 한다. 외로움마저 마케팅 대상이 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사회가 발달하고 첨단 통신수단은 날로 새로워져도 오히려 늘어나는 외로운 사람들을 마케팅이 놓칠 리 없다.

'피그말리온 효과'
아예 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비성향까지 연구 분석되고 있는 마당이다. 최근 미국 아이오와대 연구팀은 스스로를 외롭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은 제품을 구매할 때도 자신의 처지와 비슷하게 대중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제품을 선택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미국의 DVD 대여 사이트인 넷플릭스에서 외로운 사람들일수록 고객 평점이 낮은 영화를 선호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방에 걸어 놓을 미술작품을 고를 때도 남들이 좋아하는 작품은 외면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이 시종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알려지는 상황에서는 선택을 달리했다. 외로운 사람들도 대중적인 영화나 미술작품을 선택했다. 익명일 때의 동병상련적이었던 선택이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바뀐 것이다. 우리에 비해 미국인들은 남을 비교적 의식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외로움이라는 자신의 실존적 문제만큼은 내보이고 싶지 않는 것일까.

프랑스 화가 장 레옹 제롬의 작품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를 보면 눈을 뗄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바로 조각상 갈라테이아의 무릎 부분이다. 무릎 위는 따뜻한 살색이지만 다리는 여전히 창백한 대리석으로 아직 여인이 완전한 사람이 되지 않았음을 알게 해준다. 갈라테이아는 그리스 신화에서 조각가 피그말리온이 자기가 만든 아름다운 여인상에 붙인 이름이다. 그는 끔찍이 사랑하게 된 그 조각이 사람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갖게 되고, 이를 아프로디테 여신에게 아뢴다. 그러자 여인상은 숨을 쉬기 시작하고…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이아'는 그가 여인상에 키스하자 갈라테이아가 피그말리온을 향해 몸을 굽혀 오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허리만 숙이고 무릎은 채 굽히지 못한 모습이다. 돌에서 사람으로, 홀로 외로움에서 둘의 사랑으로 변화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변화가 외로움으로 돌이 되었던 친구에게나, 지금 어딘가가 돌이 되고 있는 듯한 너와 나에게도 찾아 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신화 그 이후, 강한 바램이나 염원이 기적을 일으킨다는 의미화한 '피그말리온 효과'가 이제 여기서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