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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형 특집 1탄, B형남자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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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1-31

왜요! B형남자가 죄라도 졌습니까?

불편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이제 막 친해지려 할 때, 소개팅을 할 때, 그때마다 듣게 되는 말이 있다. “혈액형이 뭐예요?” 왜. 응급한 상황에 수혈이라도 부탁하게? 내 피는 왜. 내 피는 알아서 뭐 하게. 잘 알려주려고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럼 항상 상대방은 내 혈액형을 귀신같이 때려 맞힌다. “…… 너님, 설마 B형이세요?”

그래, 나는 B형남자다. 그게 왜. 뭐가 어때서. B형이 기형도 아니고 하나같이 이제야 알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냥 B형이세요, 묻는 것도 아니고 ‘설마’ B형이냐고 묻는 건 뭐람. 내 피가 ‘설마’ 소리 들어야 할 만큼 이상한 피인가. 이건 마치 횡성에서 한약재 먹고 자란 투플러스 에이급 한우들이 광우병 걸린 텍사스 산 미국 소 바라보듯이 꼭 그런다.

“혹시…… B형?”

태어날 때부터 몸 속에 흐르던 피는 같은데, 태생부터 불편했던 건 아니다. 그때는 혈액형 별 성격이니, 혈액형 궁합이니 하는 혈액형 편가르기 문화가 지금처럼 유난스럽지는 않았으니까. 가끔 친구들의 아이스크림에 시선을 고정하고 한 입만~을 조를 때, “너 혈액형 뭔데?” 묻는 애들이 있긴 있었다. 그러다 아이스크림 주인이 나와 다른 혈액형이어서 니 돈 주고 사먹으라는 거절을 당하더라도 이렇게 속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버라이어티한 연애시대를 누려 마땅한 나이가 되자, 시작됐다. B형남자에 관한 음해 세력이 궐기하기 시작한 거다.

B형남자 연대가 그녀들에게 고함

좋아하던 여자가 있었다. 그녀도 나를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기에,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것이 반갑고 날이 저무는 것이 애틋했다. 조금씩 그녀와 가까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은 우주의 신비를 일깨워 주었다. 감수성이라곤 먹고 죽을래도 없는 내가, 설렜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녀도 별다를 게 없었다. 내 혈액형이 궁금했던 거다.

이건 뭐, 사랑하는 남자가 배다른 남매였더라 하는 식의 막장드라마도 아니고. 하필이면 그녀는 B형남자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진 여자였다. 지금까지의 연애상대가 모두 B형남자였는데, 끝이 안 좋았단다. 안 좋아도 심하게 안 좋았단다. 이제 B형남자는 꼴도 보기 싫단다. 나는 잠수를 탔다. 그녀 앞에 내 불편한 피를 고해할 용기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이쯤에서 누군가는 말할 지도 모른다. ‘거 봐. B형남자가 그렇다니까? 여자가 혈액형 좀 물어봤다고 잠수 탔다잖아. B형남자가 제멋대로라는 게 맞지?’ 그럴 거다.

내 피가 어디가 어때서? 이쁘기만 하구만!

자, 들어 봐라. 끝이 좋은 연애가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모든 연애의 대부분은 끝이 좋지 않다. 원래 심하게 안 좋은 게 정상적인 연애의 끝이다. 상대방이 정서적 배신을 하거나 애정이 식거나 바람이 나거나. 둘이 너무 좋아 죽겠는데 불가항력이 두 사람을 갈라 놓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대부분의 연애는 한 사람의 뒤통수 가격으로 끝난다. 그녀의 연애상대가 우연히 B형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던 거지, 그들은 당연한 이별의 수순을 밟았을 뿐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계속 연애하다가 결혼이나 했겠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양말 뒤집어 내놓지 말랬잖아 류의 잔소리를 나누며 살았겠지.

연애의 당연한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파국의 원인을 남자의 혈액형 탓으로 돌리는 그녀가 실망스러웠다. 내가 난관을 뚫고 그녀와 연애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그녀는 내 피를 탓할 것이고, 이별하고 난 후에도 그녀는 나를 그렇고 그런 B형남자 중에 하나로 기억할 거였다. 그게 싫어서 잠수 좀 탔다.

연애의 종말은 다 이렇게 비참하다고!

그녀의 미래에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A형이나 O형, AB형, 뭐 어쨌든 B형 말고 다른 혈액형을 가진 남자를 만나 연애만 딱 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보편적인 이별의 과정 속에서 느꼈으면 좋겠다. ‘어? 뭐지? 이 남자는 A형인데 왜 벚꽃 흩날리는 가운데, 잡은 손이 아쉬워 놓지 못하고 옥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지 않는 거지?’ 에이씨, 그런 이별이 대체 어딨어. 다들 제멋대로 구는 게 이별이지.

고집 세고 제멋대로 구는 나쁜남자 B형?

어쩌면 내가 고집스럽고 멋대로 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면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게 혈액형 탓일까. 세상의 모든 황소고집들은 모두 B형일까. 아니, 고집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대체 있을까. 제멋대로 굴지 않는 사람이 있긴 있을까.

“노는 걸 좋아하는 구만. 하지만 뭐에 하나 꽂히면 그만큼 집중도 잘 해. 남들이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면 좋아라 하고.” 이와 같은 이야기에 물개박수 쳐가면서, “맞아! 나 그래! 어쩜 이렇게 잘 맞춰요?” 그러지 말자는 거다. 안 그런 사람 없으니까 말이다. (노는 거 질색하고, 뭐 하나에 꽂혀도 설렁설렁 하고, 칭찬 듣는 게 죽기보다 싫은 사람을 보게 된다면 제보 바란다)

옛날 옛적에 A형, B형, O형, AB형이 함께 밥을 먹고 있었다. AB형은 갑자기 문을 박차고 나갔다. O형이 궁금함을 못 이기고 그를 쫓아나갔다. B형은 먹던 밥이나 계속 먹었다. 그러자 A형이 B형에게 걱정스럽게 물었다. "혹시…… 쟤네 나 때문에 나간 거야?" 나는 B형이지만 저런 상황에 닥쳤다면 궁금해서 쫓아나가 볼 사람이다. 26.8% 된다는 B형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