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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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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처럼 잘난 아이가 왜 우리 집으로 시집을 오려고 하니.” 장래 시어머
님은 끝끝내 반대를 하셨다. 그녀는 S대학원 출신 석사학위 소유자. 남편
은 대학문턱에도 안 간 일명 자유주의자. 남편이 아내보다 학벌이 딸린다
는 상식이 주는 세상의 벽. 그것은 너무나도 높고 허물 수 없는 것이었지
만 그녀에겐 목숨을 걸고 깨뜨려야 하는 벽이었다.
★ 너희들은 안된다니까..
"남자보다 여자가 학벌이 딸리는 경우는 몰라도, 남자가 여자보다 딸리는
경우는 잘되는 걸 못 봤다. 이상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안 그래도 남
자는 결혼하면 생각이 유치해지고 고집이 생기는 법인데 어떻게 살려고 하
니? 그리고 남자가 여자한테 조금이라도 자존심 상하는 걸 얼마나 싫어하
는데, 자격지심인 것도 모르고 너를 들들 볶을 거야. 조금만 네가 잘난 척
을 해도 그 꼴을 두고 못 볼 거라고. 넌 그 많은 남자들 중에 왜 하필이
면 그 사람이니. 너 지금껏 공부시켜준 부모님한테 죄송하지도 않냐. 넌
자존심도 없어?"
그녀는 매일 이렇게 거울을 보고 스스로에게 퍼붓기를 수개월. 결혼을 결
심하고 나니 이 사태를 어떻게 관철시켜야 할지 도무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양쪽 부모님들은 이미 반대의 의지를 공식화 하신 상태이고 당사
자인 기찬씨도 이미 그녀가 하는 대로 따르겠다는 식으로 두손 두발 다 들
은 상황이었다. 기찬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덕션에 들어가 카메라
보조일을 하면서 그곳에서 잠시 작가로 일하던 경옥씨를 만났다. 정치학
석사출신의 그녀는 사내에서도 큰 인물이었고, 기찬씨는 그저 카메라선을
끌고 다니던 일용직에 불과했지만 두 사람이 어떻게 사랑을 하게 되었는지
는 영원한 수수께끼다. 그러나 솔직히 기찬씨의 외모가 요즘 한류열풍의
주인공인 욘사마는 울고 갈 정도로 출중한 것만은 사실이었으니 능력 있
는 여자라면 인생을 걸고 욕심 한 번 부릴 만하고도 남았다.
★ 나 ,목숨 걸었다..
현저하게 학벌 차이가 나는 두 사람 중 결혼에 골인하기 위해서 목숨을
건 쪽은 여자인 경옥씨다. 나이는 기찬씨가 두 살이나 많았지만, 리더십
이 강한 경옥씨가 매사를 결정하고 추진하는 데는 늘 선봉에 서는 기질이
있었으니까. "나 목숨을 걸어서라도 저 남자를 가져야 할까?" 그녀가 이
마지막 말을 거울 앞에서 중얼거린 후, 해서는 안될 모험을 했다. "어머,
말도 안돼 정말일까? 드라마에서나 보던 일이야. 정말 약을 먹었어? 얼마
나 많이? 수면제는 어떻게 산 거야, 그거 함부로 안 준다던데 한 두 알씩
약국을 돌아다니면서 모았어?" 무용담을 듣고 있던 친구들은 이런 일이 가
까이에서도 실제로 있을 수 있구나 하는 신기함에 안절부절 했다.
그녀는 침착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눈을 뜨니 위 청소를
말끔히 끝낸 상태였고, 머리맡에는 시어머니 되실 분이 눈물을 흘리며 앉
아 계셨더란다. 사실 수면제는 7알을 먹었고 그 중에 대부분은 바닥으로
흘려버려 사고현장을 발견한 시어머님은 수십 개를 먹고 남은 대 여섯 알
이 흩어진 것이라고 보시기 딱 좋은 상황이었던 거다.
★ ' 아드님을 제게 주십시오 '
어쩌면 그런 조각 같은 외모의 남자를 손에 넣었을까. 워낙 강단이 있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녀였기에 기찬씨가 그녀를 사랑하기도 했지만 존경
심 또한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들 커플이 성을 바꾼다면 더 자
연스러울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경옥씨는 남성적인 기질을, 기찬씨는 조
용하고 여성적인 차분함의 소유자. 그러니 경옥씨가 마지막으로 사고가 있
던 날 그녀의 시어머님의 손을 잡고 한 말이, "아드님을 제게 주십시오.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습니다."였다니 참 특이한 커플인건 사실인 것 같
다.
두 사람이 결혼한 지 이제 5년, 기찬 씨는 카메라 보조생활을 마치고 음악
방송 카메라맨이 되었고, 경옥 씨는 유명한 패션잡지의 편집장으로 승승장
구 하고 있다. 물론 5살 된 아들의 인물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며, 이미 CF
계에도 진출, 꾸준히 기획사의 러브 콜을 받고 있다. 편집장인 아내는 밤
샘작업이 많고 해외출장도 잦기 때문에 조만간 기찬씨는 일을 천천히 접
고 2년 전부터 시작한 대학입학 시험에 본격적으로 집중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물론 모든 것은 아내인 경옥씨의 제안으로 시작한 일이다. 과연 멋
진 커플임에 틀림없다. 학벌이나 경제력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지레 사랑하
는 감정조차 싹을 잘라버리는 요즘 시대에, 경옥씨와 기찬씨 부부의 이야
기는 많은 귀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단 경옥씨가 외모지상주의자였다
는 사실에는 할말이 없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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